매일 오는 기회가 아니다.

Peterson 자신은 이 역사와 상당히 친숙하다. 위원회의 보고서에는 원자력에 대한 논의를 공포와 수사에서 미래로 옮겨가려는 용감한 노력이 엿보였다. 그러나, 공직의 과학자가 아무리 신중하게 말해도 소위원회 보고서에서 토륨은 단지 의무적으로 언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. 원자로와 핵주기 보고서의 가장 중요한 권고사항은 NRC가 재구성되어 4세대 원자로 세계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.“우리는 연방 정부의 원자력 에너지 R&D
투자 중 일부가 NRC로 가서 지원, 개량형 원자로와 핵연료 주기 기술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과 아주 많이 다르게 할 수 있도록 하는선행 연구를 수행하는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.”고 Peterson이 나에게 쓴 이메일에서 설명했다.

그가 염두에 둔일부는 5 퍼센트에서 10퍼센트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다. 그 보고서는 선행 연구를 구성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설명하지는 않는다. 명백히, 연방정부의 기술 관료주의는 Milton Shaw와 WASH-1222 시대 이후로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. 원자로와 핵연료 주기 기술보고서에 따르면, 토륨은 기본적으로 원자력 시대의 시작 이래로 고려되어 왔었다. 차세대 원자력 기술자와 경영진이 업계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. 한 발짝 물러서서, 혹은 Washington을 벗어나서, 더 넓은 시각으로 그림을 해석해보자.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려 하는 많은 국가들뿐만 아니라 회사들도 21세기 원자력 발전 산업의 근간으로 토륨을 사용한다. 하지만, 액체 연료 토륨 원자로로 향하는 움직임은 그 다음으로, 궁극적으로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며 효율적인 에너지 형태에대한 수세기 동안의 탐구가 될 것이다. 이 발견은 고체에서 액체로의연료 형태의 진전, 그리고 핵 폐기물의 제거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될 것이다.

탄화 수소의 현대화 시대의 탄생은 에드윈 대령이 북아메리카 펜실베니아에서 처음으로 유정을 뚫었을 때인 1859년, 혹은 더 이전 첫번째 현대화된 유정 (Oil Well)이 카스피 해 근처 바쿠에서 러시아 공학자 에프앤에 의해 뚫렸을때인 18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. 사실, 마법의 액체에 대한 인간의 매혹과 탐사는 기록된 역사의 이전으로 어느 정도 되돌아 간다. 원유의 끈적한 형태인 역청(Bitumen)은 기원전 3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되었다. Iliad에는 트로이 군은 낡지 않는 불이라 불리는 액체 석유의 무기화된 형태를 그리스인의 배에 부어 꺼지지 않는 불을질렀다. 중동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가스의 침투는 영구적인화염을 촉발시켰고, 모세가 혐오했던 불 숭배를 만드는 데 공헌했다. 암흑 시대(Dark Ages)의 무수한 전쟁에서 비잔틴이 사용했던 발연 황제은 당시 원자폭탄 급으로 궁극적인 파괴 무기의시초였다. 간단한 통찰을 통하여 사람들을 매혹한 액체 연료는 고체연료보다 더 효율적이고, 운반 가능하며, 기계에 적용하기 쉬우며 단위 부피 당 에너지 밀도가 더 크다. 30만년 전, 그 당시 사람들은 열, 조명,요리를 위하여 체계적으로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점차 쉽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았다. 사막을 횡단할 때나, 적의 배에 투척하기 위해서는 액체 형태의 가연성 연료가 고체 연료보다 더 낫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큰 독창성이 필요하지 않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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